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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 Veterans Meeting Place

만남의 장 소개

파병부대 소개

#01 주월사

주월한국군사령부
  • 부대창설 : 1965.9.25. 서울필동(채명신소장)
  • 참전기간 : 1965.9.25. ~ 1973.3.23.
  • 희생 : 전사 45명(장교 18명, 사병 27명)/부상 54명(장교 9명, 사병 45명)
  • 사령관 : 초대중장 채명신, 2대중장 이세호
  • 부대지휘 : 주월사를 비롯하여 3개 전투부대(맹호, 백마, 청룡)와 1개 군수 지원부대(십자성), 1개 군사원조단(비둘기), 2개 수송전대(백마, 은마)등 8개 한국군
  • 전과 : 1964.7.18.부터 1973.3.23.까지 대부대 작전 1,174회와 소부대 작전 576,302회 등 총 577,476회 작전을 실시 한국군 전술책임지역 7,000km를 평정하고 월남난민 120만 여명에 대한 거주를 정착시켰다.
  • 대민사업 : 진료 3,523,364명, 식량 19,640톤, 의류 461,764점, 농기구 6,406대, 가옥 및 교실 3,319동, 교량 132개, 도로 394km, 태권도 보급 902,060명, 경로 및 어린이 잔치 6,848회, 연예공연 2,304회, 자매결연 3,364곳 등 끈끈한 정으로 평정사업과 대민사업을 병행실시, 진정한 우정을 심었던 결과로 오늘날까지 월남국민들이 따이한을 잊지 못하고 있다.

#02 맹호부대

밀림의 왕자.. 맹호부대(보병수도사단)
  • 파월 : 1965.10.16. 부산 3부두를 출발, 1965.10.22. 월남 퀴논에 상륙
  • 참전기간 : 1965.9.25. ~ 1973.3.7.
  • 참전군인 : 114,992명 (장교 7,652명, 사병 107,340명)
  • 희생 : 전사 2,111명(장교 186명, 사병 1,925명)/부상 4,474명(장교 246명, 사병 4,228명)
  • 전투 : 175,107회(대부대 전투 521회, 소부대전투 14,586회, 기타전투 160,000회)
  • 대민사업 : 퀴논 지역에 문화센터, 학교 건물, 공원팔각정을 건축하는 등 많은 대민지원사업을 벌였으며, 1972.4.18.부터 1972.5.15.까지 약 한달 동안 파월 한국군이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안케 패스 전투를 비롯하여 1966년 8월의 둑코작전, 월게작전, 돌풍작전, 맹호작전, 해산진작전 등 수많은 전투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특히 둑코전투 승리는 월남전의 기적으로서 용맹성을 세계만방에 떨쳤다.
  • 사령관 : 초대 채명신소장에 이어 류병현, 정순민, 윤필용, 김학원, 이희성, 정득만 소장이 지휘

#03 백마부대

천하무적... 백마부대(보병 제 9사단)
  • 파월 : 1965년 10월, 한국군 전투부대가 남베트남에 파병된 이래 수도사단은 빈딘성의 퀴논 일대에서, 제 2해병단은 푸엔성의 뚜이호아 일대에서 평정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주월 한국군 사령부의 입장에서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지역평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1개 군단 규모의 병력을 유지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주월 미군 역시 한국군의 증파가 절실한 입장에서 정부에 전투부대 요청을 검토한 결과, 정부는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제 9사단을 파월부대로 지명하여, 양평으로 부대를 이전하고, 파월을 위한 편제료에 따라 인원과 장비를 보충받고 부대개편 작업과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후 1966.6.16. 부산 3부두를 출발, 1966.9.22. 월남 나트랑에 상륙, 인근 지역인 닌호아에 주둔했다.
  • 참전기간 : 1966.9.22. ~ 1973.3.11.
  • 참전군인 : 105,336명(장교 6,445명, 사병 98,891명)이 참전
  • 희생 : 전사 1,328명(장교 78명, 사병 1,250명)/부상 2,410명(장교 160명, 사병 2,250명) 국군
  • 사령관 : 초대 이소동소장에 이어 박현식, 유창훈, 정규환, 조천성, 겸영선 소장이 지휘
  • 전투 : 175,107회(대부대 전투 521회, 소부대전투 14,586회, 기타전투 160,000회)
  • 대민사업 : 대민농사, 노력봉사, 의료봉사, 도로 및 주택건설, 급수시설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04 청룡부대

귀신 잡는 해병.. 청룡부대(해병 제 2여단)
  • 파월 : 1965년 9월 20일 포항에서 출범, 전투부대로서는 최초로 1965년 10월 3일 파월. 깜란에 상륙하여 깜란의 동바틴 지역 일대에서 경계 및 평정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어서 1965년 12월, 청룡 1호 작전을 전개하면서 뚜이호아 지역으로 이동하여 남베트남의 3대 곡창의 하나인 뚜이호아 평야를 평정했다.
    그 결과 베트공의 실량보급원을 차단하고, 푸엔성 주민들의 식량난을 해소하였으며, 1번 도로를 개척하여 지역 안정을 기하였다.
    그 후 1966년 8월, 추라이 지역으로 이동하여 지역평정 작전과 함께 1개 중대로 북베트남 정규군 1개 연대 병력을 격멸시킨 짜빈동 전투로 국내외의 명성을 떨쳤다. 이어서 1967년 12월, 호이안 지역으로 이동하여, 호이안 서남부 일대를 평정하였으며, 남베트남 제 2의 전략도시인 다낭의 안정에 기여한 후 1972년 2월 29일 귀국하였다.
  • 참전기간 : 1967.12.12. ~ 1972.2.24.
  • 참전군인 : 37,340명(장교 2,166명, 사병 35,174명)
  • 희생 : 전사 1,202명(장교 42명, 사병 1,160명)/부상 2,904명(장교 99명, 사병 2,805명)
  • 사령관 : 이봉출 여단장의 뒤를 이어 김연상, 이동호 , 이동용, 허홍준장

#05 십자성부대

한국군의 동맥.. 십자성부대(100군수 사령부)
  • 파월 : 1965.10.12. 여의도 광장에서 맹호부대와 같이 출범
    1965.10.16. 부산항 3부두를 출발, 1965.10.22. 퀴논에 상륙, 맹호부대 사령부와 같이 퀴논 인접지역에 주둔. 출국당시에는 군수지원 사령부였으나 1966.6.1. 퀴논에서 부대명칭을 100군수 사령부로 개정.
    1966.8.20. 십자성 부대가 나트랑으로 이동하였다.
  • 참전기간 : 1965.9.25. ~ 1973.3.23.
  • 참전군인 : 652명(장교 53명, 사병 599명)
  • 희생 : 전사 213명(장교 26명, 사병 187명)/부상 439명(장교 27명, 사병 412명)
  • 사령관 : 초대 이범준 사령관에 이어 유학성, 이영일, 이창복, 김종달, 신유정 준장이 사령관을 맡아 부대를 지휘했다.

#06 비둘기부대

평화의 사도.. 비둘기부대(건설 지원단)
  • 파월 : 주월 사령부 예하에는 비둘기 부대와 십자성부대, 그리고 백구부대와 공군 지원단이 편성되었다.
    이중 한국군 부대로써 최초로 파견된 비둘기 부대는 이름이 상징하듯 의료진과 건설공병으로 구성된 평화의 사도였다. 비둘기부대는 1965년 2월 5일 경기도 현리에서 국방부 일반명령(육) 제 12호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1965년 3월 16일 전부대가 남베트남에 전개하였다. 이후 비둘기부대는 남베트남 주민의 숙원사업을 해결하여 깊은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양국의 선린 우호관계 증진의 초석을 놓았다.
    1964년 7월 28일 제 1이동외과 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을 선발대로 한국군 부대로서는 최초로 파월된 비둘기부대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평화의 사도 전사부대이다.
  • 공공시설 건설 및 대민지원 활동 : 병원, 학교, 성당, 불당, 양로원, 고아원 등 증·개축
  • 1968.4.30. 비둘기 기술학교 정식 인가 : 발전기 및 엔진 전문교육/양재, 재봉, 재단, 자수교육/ 3개월 타자학원 운용/농토개간, 수리 시설 개선, 농기구 기증준장
  • 사령관 : 초대 조문환준장에 이어 최영구, 최일영, 전자열, 차규헌, 김진구, 곽응철 준장이 지휘

#07 백구부대

바다의 제왕.. 백구부대(해군 수송전부대)
  • 파월 : 국방부 훈령 제 2호(1965.1.28.)에 의거, 1965년 3월 2일 한국함대로부터 파월 됨
  • 수행임무 : 부대에 배속된 LST-812함은 비둘기부대의 예하부대로 편성되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1965년 7월 9일 증파된 LSM-609(월미)함과 611(능라)함이 증편되었으며, LSM의 증파를 계기로 동년 7월 12일 장교 23명, 사병 238명으로 해군 수송단대를 편성하였다. 이어서 국방부는 남베트남 내의 해상수송소요가 증대하게 되자, 1966년 2월 1일 LST-807(운봉)함과 808(덕봉)함을 증파하였으며, 동년 3월 15일을 기하여 비둘기 부대에 배속되어 있던 해군 수송단대를 해군 수송전대(백구부대)로 개편함과 동시에 주월 한국군 사령부의 직할부대로 승격시켜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해군 수송전대(백구부대)는 사이공을 모항으로 북쪽은 다낭으로부터 남쪽은 캄보디아 국경부근의 푸섬에 이르기까지 1천여 마일의 항정에서 미국 및 남베트남군과 통합된 연안 수송 임무를 수행하였다.

    백구부대가 수송한 물자와 장비 중에는 한국군뿐만 아니라 연합해군의 입장에서 남베트남군의 군수물자 수송도 있었으며, 남베트남 정부가 요청하는 민간인 물자수송도 상당부분을 담당하였다. 한국함대에서 운항하는 LST 1척은 주 베트남 한국군의 보급물자 수송을 위하여, 본국과 남베트남간의 수송임무를 전담하였다.
  • 사령관 : 초대 이응기대령에 이어 이계호, 홍기경, 홍영현, 김용수, 정원민, 염인열, 정종혁 대령이 지휘

#08 은마부대

공수지원.. 은마부대(공군지원단)
  • 파월 : 한국군 최초로 남베트남에 파병된 공군요원은 1965년 3월 비둘기부대와 함께 파병된 장교 2명과 사병 1명으로 구성된 연락 겸 의전요원이었다. 이어서 1965년 9월 주월 한국군사사령부가 창설되자, 지상군에 대한 전술항공 지원의 소요가 증대됨에 따라 공군에서는 1966년 7월 30일 이유쇠 중령 등 10명을 전술항공지원본부 요원으로, 이창빈 중령 등 13명을 공수자원요원으로 각각 파월하였다.
  • 수행임무 : 한편 남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의 작전이 장기화되고, 병력이 증가됨에 따라 파병된 장병의 교대와 환자후송, 군수물자공수 등 한·베트남간의 장거리 항공소요가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공군은 1966년 6월 30일 미 공군으로부터 C-54D를 인수받아, 1966년 10월 17일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C-54D 인수식과 한·월 간 항공수송을 전담하게 될 은마부대 명명식을 거행하고, 한국 공군기로 월남전선의 후방공수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또한 월남전선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공지합동작전의 필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공수지원 및 기타 기술적인 면에서 공군의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공군과 주월 한국군 사령부는 1967년 7월 1일, 주월 한국군 사령부의 예하부대에 분산되어 운용되고 있던 공군 지원요원을 통합하여 공군지원단을 창설하고, 그 예하에 전술항공지원대, 비행대, 수송지원대를 편성하여 주월 한국군 사령부의 직할부대로 운용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1967년 8월 4일 C-46D 수송기 2대를 주월사 예하의 공군 지원단에 배속시켜, 주 2회의 정기비행과 예하부대의 요청에 의한 수시 비행으로 공수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주월 한국군의 작전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최초로 파월된 2대의 C-46D 수송기가 노후화되어 작전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자, 1968년 10월 22일 C-46D 수송기 1대를 증파하였으며, 1970년 5월 19일 안정성과 적재량, 속도 및 항속거리 등이 우수하고, 고성능 통신장비 및 항법장치를 갖춘 C-54D 수송기로 교체함으로써, 보다 향상된 공수지원 임무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베트남전에서 각종 항공작전과 지원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공군지원단은 1973년 3월 13일 3대의 C-54D 수송기편으로 선발대 42명이 귀국하였고, 동년 3월 15일에 후발대 46명이 DC-8 항공기로 수원기지에 도착함으로써, 철수를 완료하였다.
    공군지원단이 월남에서 수행한 지원실적은 전술항공지원 10,669회, 전방공중통제 1,960회에 달하였으며, 1,420회의 공수지원을 통하여 19,800명의 인원과 223만 파운드의 물자를 수송하였다.
  • 사령관 : 초대 배상호대령에 이어 최규순, 왕현식, 손만화, 박희곤, 김중열 대령이 지휘